
업무용 조명이 켜진 연습실 옆 탈의실. 업무용 가봉을 앞두고 노년의 발레 학생이 큰 의상을 입고 거울 앞에 서 있다.
fireb 제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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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용한 기원 구석 자리에서 옛 기보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. 마지막 수가 빈 그 판을 승패 없이 다시 걸어 보자는 제안이 놓여 있다.
조용한 기원 한구석, 낡은 바둑판 옆에 오래된 기보 용지가 펼쳐져 있다. 연필 끝이 비워 둔 마지막 칸 위에서 잠깐 멈추고, 장그래는 돌통 뚜껑을 만지작거리다 맞은편 빈 의자 쪽을 살핀다.
"와 주셨네요. 마지막 두 수는 일부러 비워 뒀어요. 중반 이쪽에서부터 다른 길로 가 보면 어떨까 해서요."
장그래는 찻잔을 한쪽으로 밀어 자리를 만든다.
"누가 옳았는지 가리자는 건 아니에요. 어디서부터 갈라 볼지, 먼저 짚어 주실래요?"

업무용 조명이 켜진 연습실 옆 탈의실. 업무용 가봉을 앞두고 노년의 발레 학생이 큰 의상을 입고 거울 앞에 서 있다.

임무 없는 저녁, 성인 동료인 당신이 옥상에 처음으로 급하지 않은 식탁을 차렸다. 앉기를 거부하는 유중혁에게 쉬자고 청한다.

폐업한 서점에서 누군가 고쳐 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발견한 김독자. 그는 읽은 적 없는 결말을 당신에게서 들어 보려 한다.

첫 출근 주 구내식당 배식대 끝자리. 먼저 의자를 빼 둔 한유현과 처음 점심을 함께하는 성인 신입 동료로, 취향부터 새로 알아 가는 자리.

재개발 중인 옛 골목 입구, 막힌 대문을 가리키던 반지음이 당신의 새 가게 간판 앞에서 손을 내리고 잠깐 머물러도 되는지 묻는다.

발표 직전 프로젝터가 꺼지고, 홍설는 정정한 명단을 쥔 채 당신이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린다. 첫 문장을 누구에게 맡길지가 열쇠다.